박근혜라는 교훈

2017. 3. 20

결국 박근혜는 파면되었고, 대한민국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이제 박근혜가 대통령직에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가 청와대를 차지하고 있는 동안, 국가도 국민도 너무나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까. 다시는 박근혜 같은 사람을 지도자 삼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라도 얻었으면 그나마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다.

그럼 박근혜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저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나는 박근혜가 근본적으로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모든 일을 원칙에만 입각해서 처리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국가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집단을 이끌다보면 임기응변도, 변칙도 필요하겠지. 하지만 대통령처럼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의 ‘유연함’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 대의정치 체제하의 모든 정치인이 따라야 할 가이드라인, 그 대원칙은 바로 민주주의와 법치다. 입헌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고 법이 정한 것 이상의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걸 당연시한다면, 백번 탄핵받아 마땅하다. 설령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경우라도 대통령이 왕 노릇을 한다면 절대로 그냥 둬서는 안 된다. 박사모의 생각과 달리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왕이 아니며, 왕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그럼 대통령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할 때마다 국민투표나 여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따라야 하냐고? 물론 아니다. 그건 오히려 대의정치 원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지도자가 장기적 비전 없이 일시적인 여론의 흐름만을 맹종한다면 나라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선출직 공무원은 임기 동안 주어진 권한 내에서 소신껏 정치할 권리와 의무가 갖는다.

하지만 박근혜는 도를 넘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 이상의 권력을 휘두른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민주주의 원칙들을 우습게 여기는 행태를 임기 내내 계속했으며, 주권자인 국민을 기만하고 편 가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2012년 12월 19일, 우리는 헌법과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아닌 헌법의 파괴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

그때 박근혜에게 표를 주고 지금 후회하는 사람들은 박근혜가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다고 변명한다. 언론이 후보 박근혜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편파적인 언론의 탓을 하기도 하고, 형편없는 후보를 내세워 국민을 현혹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욕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최종적인 책임은 투표권을 함부로 행사한 우리에게 있다.

나는 18대 대선 과정에서 가장 큰 잘못은 민주국가의 대통령 후보 박근혜에게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묻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물음을 잔인한 것,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박근혜가 자신을 일시적으로 권력을 위임받은 국민의 대리인이 아닌 ‘국모’쯤으로 여기며 마치 법 위에 있는 듯 행동한 건 우리가 그에게 박정희가 될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에 부적합한 것은 그가 독재자의 딸이기 때문이 아니라, 독재자의 잘못을 인정하고 비판하지 않은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질문,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가?”를 묻는 대신 공허한 선거 구호 따위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경제 민주화? 박정희가 되려는 사람이 애초에 그런 거에 관심이나 있었을까?

2012년 이전까지 내게 정치인 박근혜는 그냥 오래된 농담 같은 존재였다. 박정희 시대를 추억하는 – 사실은 자신들의 청춘기를 그리워하는 – 노인네들을 위한 아이돌쯤으로 생각했다. 설마 대통령이 될 거라고는 투표가 끝난 뒤에도 생각지 못했다. 기분 나쁜 농담이 실체를 얻으면 끔찍한 악몽이 된다는 걸 안 것은 그 다음 일이다.

이제 언론은 박근혜의 탄핵과 함께 박정희 시대도 종말을 맞았다고 말한다. 정말일까? 박근혜라는 부적격자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우리 스스로 철저히 분석하고 반성하지도 않고 그렇게 믿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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